오늘 배가 고팠다. 그런데 밥을 먹을 생각보다는 그냥 앉아있고 싶었다.

졸렸다. 자면 안되는데, 이따가 학술동아리 설명회에 가야 하는데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잠들었다. 일어나니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는 어제 과외가 피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분은 좋았다. 경현이가 수학 문제를 스스로, 굳이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술술 잘 풀어내는 것이었다. 막히면 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대단한 발전이다.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피로함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엊그제만 해도 밤샌 다음에 피로를 달래주기 위해 잠깐 낮에 눈을 붙여주고 다시 일어나서 밥먹고 공부하고 그런 식이었는데.. 이제 이런 일기를 쓰다보니 간신히 정신이 드는구나.

금융학술동아리 설명회는 6시부터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은 5시..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맛으로 정신을 차려 공부하는 것이었던가.. 부끄럽다. 오늘 하루가. 죄책감까지 드는군.


일어나자. 글을 다시 수정한다. 일어나자고 나를 독려하기 위해서. 밤은 또 새면 된다. 아, 맞다. 동아리에서 술을 많이 먹게 할까봐 그게 걱정이 들었던 거였지 참. 정말 걱정되네.

  순간 아버지가 생각났다. 왜 생각났을까..

  그냥... 내가 공부를 하다가.. 아까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지.

  언제나 같은 얘기지만, -밥 먹었니, 뭐 먹었니, 왜 라면을 먹었니, 밥 꼭 챙겨먹어라, 날씨 추워졌으니 조심해라. 전기장판 틀고 자라. 등등- 그 어머니의 말투에서, 목소리에서, 정말로 나를 걱정하고 걱정하는 듯한 따뜻함이 배어나온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아버지한테 피해를 너무 많이 보았고 받기는 커녕 매를 많이 맞았다.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훨씬 많았다. 내가 대전으로 오기 전에도 맞았었다. 지금은 반성하는 척을 하지만, 내가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사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목이 졸려 피가 고이고, 옷이 찢어진 상태로. 나는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야간인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주간이었으면 너무 창피해서 일터를 뛰쳐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보는 사람도 적고, 오는 사람도 꾀죄죄한 그런 심야였다는 것이 내겐 천만 다행이었다.


  다행? ...훗.


  대전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조금 긴 장문이었는데, 아버지가 실없이 잡생각을 한 뒤로 간간히 내게 문자를 보내는 습관이었다. 내용은 요약하면 '그동안 내가 실없이 산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였다. 지랄하네 하고 휴대폰을 닫아버렸다.

  안지웠군. 지워야겠다. 지금 지웠다.


  나는 최소한 친구들보다는 좋은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보다는 돈이 많은 편이고 친구들보다는 평판이 좋고 비전이 갖추어진 편이다. 끊임없이 걱정과 안부전화로 나에게 사랑을 표현해주시는 자상한 어머니. 따뜻한 친척들. 친한 친구들과 최고라고 자부하기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욕심을 내면 분명 끝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는 분명 많은 것을 갖추고 있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텐데, 나는 왜 꼭 잘 나가다가도 잘 웃지를 못하고 욕심을 키우게 되는 것일까? 그런 이유를 생각해보니 언제나 나에게 걸림돌이 되어온 아버지.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늘 기분이 더럽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좋은 식사 좋은 집 좋은 생활을 하면서도 나보다 못한 효율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나는 그런 환경에서 지내왔다면 정말 지금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창출해 내지 않았을까 한다. 성과라는 것은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의 도움이 있어야 그것이 시너지가 되어 매우 큰 효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그러기는 커녕 못살게 괴롭히고 방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고 못마땅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혐오했다. 유감인 것은 그것이 정답이었다는 것이고, 그걸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이 무척 짧았다는 것이고, 나는 지금도 휴우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지. 20여년의 악행이 어디 가겠어? 그렇다면 나는 20여년을 복수해야지. 안그래?


  그를 걱정한다기 보다, 그를 어떻게 하면 괴롭고 죄책감에 스스로 자멸하는 길로 들어서게 할 것인가가 내 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지금의 실정이다. 나는 이렇게 성장하고야 말았고, 그는 엄청난 죄를 지었다.

요즘 늦잠을 많이 잔다. 왜 이러지?

오늘도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오후 2시까지 스터디 모임에 가야 하는데, 할 일도 많은데, 이렇게 늦잠을 많이 자면 안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조금 있으면 계절학기도 시작되고, 그에 앞서서 선물거래상담사 자격증 시험도 보기 때문에 계속 이런 생활 패턴을 유지하면 안된다. 나는 고쳐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고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아까 오전에 어머니와 전화를 했는데,

그 당시 얘기가 아직도 계속 귓 속을 맴돈다.


지금 나는 이모의 아들, 즉 외조카 과외를 맡기로 하였다.

이모가 나름 챙겨주시기도 하고, 과외비도 지급해 주겠노라 말씀하셨다.


바쁜 와중에도 이를 수락한 것은 학비 조달 여건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으며

더불어 과목이 수학, 영어였던 만큼 내 공부 의지를 끊지 않고 계속 이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전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통해

과외비는 받지 않겠다고 말하라 하셨다.


계속 신경쓰인다. 대답은 알았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과외 힘들게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사실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어휴 짜증나.

신경쓰지 말아야지. 내 소관 아님.

돈이나 받아 쳐먹고 나 보람과 경험이나 쌓고

무시하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