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 갑질과 꼰대질 난무하는 상황에서.

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년 어른을 비꼬아 부르는 말로 자신보다 어리거나 힘이 없는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대뜸 가르치려고 하거나 훈계하려고 드는 이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동네 어귀 수퍼마켓에서 막걸리에 취한 채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에게 ‘어디 여자들이 밤늦게 돌아다녀’라며 일장연설을 하는 분들이 바로 꼰대입니다. 이처럼 꼰대는 어느 개인 한명을 특정지을 때도 있고 확산과 복제를 거쳐서 마치 하나의 이념처럼 형셩이 되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할 때 입국심사를 받습니다. 여권을 확인하고 사진과 실제 얼굴을 대조하며 간단하게 행선지와 방문목적을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유명인이라면 입국 게이트를 지나쳤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입국심사가 있습니다. 그 입국심사는 기자회견장에서 공개적으로 치러집니다. 이때 핵심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치, 독도 그리고 최근에 시험문제로 추가된 싸이까지. 이 고유명사들이 포함된 질문은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 연말연시나 추석같은 명절이라면 한복을 입고 절을 올려야하며 심지어는 이런 질문까지 받습니다. ‘다시태어난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냐?’ 저는 이 질문을 기자에게 다시 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다시 태어나도 이 땅에서 태어나고 싶습니까?

집안 망신과 국제적 망신. 누군가 어떤 과오를 범했을 때 흔히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우린 우리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무능하거나 무감합니다. 따라서 자기스스로를 한발자국 떨어져서 내다보는 자기 객관화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외국인의 외국언론에 의해서 스스로를 규정짓거나 평가를 받고 때론 화를 내고 뻔한 성찬에도 헤벌레 웃곤 합니다. Do you know KIMCHI? Do you know DOKDO? 는 그래서 우리가 모셔온 이방인이 우리에게 적합한 잣대를 갖고 있는 지 또는 우리편에 서서 같이 싸워줄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영화홍보와 상품판매를 위해 온 이들은 당연히 우리 귀에 착 감기는 말만 남기고 사라질 뿐이지요. 이정도 줏대없음으로 끝나면 그럭저럭 견딜만한데 이런 꼰대이즘은 한국을 사랑하라고 외치는 것 이상의 피해를 가집니다.

꼰대들은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지 못하니 모든 일을 간단하게 이분법으로 구분합니다. 칭찬과 망신.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원인과 결과를 찾아보고 다른 유사사례와 비슷한 점은 없는 지 어떤 서사적 맥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 지를 판단하기보단 쯧쯧 혀를 차면서 피해자를 더 가해자보다 더 욕보입니다. 아이돌 스타들의 노예계약이 문제가 되자 국제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열풍이 식을 수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모 지역에서 정신지체아동에 대한 유지들의 성폭행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지역관광수입을 걱정하는 이들이 그러합니다. 무형의 가상의 거대한 손실을 미리 만들고 그 원인을 사건 당사자 이자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은 안전해지니까. 아까 서두에 등장했던 막걸리에 취한 할아버지도 가슴에 쌓인 울분을 어떻게든 풀어야겠는데 별 다른 방법은 못 찾겠고 약해보이고 후환이 없어보이는 젊은 여인들에게 큰 소리를 치면서 풀어내는 것이죠. 꼰대들에겐 꼰대레이더가 있어서 나이,체격,학벌,직업,수입,자동차 배기량,손목시계,성별로 '만만한 이들'을 골라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꼰대짓을 하기 위해서 특화된 능력이지요.

꼰대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자신만이 정의롭다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또는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은 짐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쉽게 냉소를 날립니다. 2014년. 저는 이제 41살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중년남성에 돌입하면서 저 자신도 모르게 멈칫할때가 있습니다. ‘나때는 안 그랬는데’,’애들이 열정이 없어’,’아무튼 요즘 애들은…’ 이런 생각이 너무나 손쉽게 머릿속을 맴돌다가 입밖으로 나오는 것을 간신히 진압한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2014년 최소한 꼰대는 되지 말자며 다짐하면서 저만의 예방책을 만들어봤습니다.

- 말을 적게 하자.
언어는 관념의 바다이고 입밖으로 내뱉은 말은 그 관념의 바다에서 내가 직접 한바가지 길어올린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가 아니라 척수를 통해서 내뱉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말이란 것은 치약과 같습니다. 한번 짜내면 다시 넣을수가 없습니다. 이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을 여는 횟수를 줄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 함부로 조언/위로하지 말자
본인의 인생에서 어려웠던 부분 힘들었던 시기를 하나의 전설로 만들고 그걸 통해서 성공법칙을 추려냅니다. 그리고 이걸 강요합니다. 술자리에서 가장 꺼려지는 사람이 자수성가한 사장님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전설과 법칙을 알려주고 싶은 겁니다. 본인은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큰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일반화하기 어려운 그런 경험들은 타인에겐 별반 효과도 없으며 더군다가 술자리에서 “내가 젊었을 땐 말이지. 하루에 4시간 자고 일했어”같은 내용의 무한반복은 어려웠던 시절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일뿐입니다.

- 타인의 업적을 인정하려고 노력하자
삼십대를 넘어 사십대의 영역에 진입하니 인생에 있어서 몇 개의 방점을 찍은 이른바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보입니다. 영역이 넓어지고 업적을 평가받습니다. 그것은 모두 엄격한 자기관리의 산물입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완결성을 바탕으로 외부와 소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경향성이 강해지만 종종 타인의 업적을 낮게 평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운이 좋아서, 어쩌다보니, 빽을 써서 등등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말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 바로 정신적인 노화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 건강을 챙기자
건강한 육체라는 것은 젊음의 시기에 잠깐 보장해주는 조물주의 선물입니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60세이후의 삶 이란것은 절반이상이 투병생활입니다. 몸이 병들고 아프면 사람은 편협해지기 쉽습니다. 스스로 건사하기도 힘든데 주변사람의 수고스러움이나 공동체의 아픔에 눈을 돌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남자라는 동물은 자신보다 젊고 건강한 수컷에게 어마어마한 질투를 느끼며 그 강도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공정하지 않은 판단, 사적인 감정에 치우친 행동을 할 때가 있으며 이는 그를 진짜 꼰대로 만들어버립니다. 미학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배 나오면 끝입니다. 신경 써야 합니다.

- 수입의 일부를 기부하자
안타깝고 눈물어린 감동사연, 주먹을 벌벌 떨게 만드는 피해자들의 고통, 파렴치한 가해자들의 행각. 이런 내용들이 담긴 게시물이 SNS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물이 끓어 기화되듯이 빠르고 맹렬하게 반응합니다. 거침없이 올라가는 좋아요와 리트윗들. 분노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아이콘을 손으로 꾹꾹 누릅니다. 그리고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물론 널리 알린다는 것엔 일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건 해결의 키를 또 누군가에게 넘기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지구의 공전궤도를 조금이나마 바꿀려고 노력하는 곳에 아주 조금이라도 기부하세요. 타인에게 무엇을 베푸는 것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자신만을 생각하며 썩지않게 하는 방부제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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