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전화기 너머의 엄마 웃음 소리를 듣다보면
이대로 죽어야겠다는 문턱에서 멈칫하게 된다.
항상 힘들 때마다 그래왔던 것 같다.
모 교수님이 특별히 조언을 해 주셨다.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체로 학위과정에 있는 동안에는 지도교수님 욕을 그렇게 하다가
마치고 나면 "그래도 훌륭하신 분이야", "그래도 내 졸업논문에 싸인해 주셨어"라며 해피엔딩이 되어버린다고.
이런건 학위를 마친 사람만이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또, 다른건 다 떠나서, '포기한 것'과 '포기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고.
그 순간 순간은 무언가 딜레이되는 것 같고, 그 짧은 딜레이가 무척 크게 느껴지겠지만
삶은 길게 보는 것이라고.
나의 특수성을 주변이 고려하고 배려하지 않아주고 하는 것은 유감이지만,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차근차근 밟아온 것 같은 사람들 또한, 안그렇게 보이겠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다 거쳐온 것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이고,
그 때 그들도 때려칠까,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몇 번씩 찾아오는 것을 견디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포기했느냐 안했느냐가, 장기적인 삶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학부도 아닌, 대학원 과정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볼 필요가 있다고.
하긴 지금에 와서 느끼는건데
이 정도면, 나 같은 학생에게 계속 손을 내밀어주시는 지도교수도 없다고
다시 미루어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항상 말을 잘 듣고 난 후의 결과가 좋지 않아서 항상 원망해왔으면서도
위기를 느끼는 찰라에 이런 느낌이라도 받는 것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이긴 한 것 같다.
나는, 진짜 어떻게 될까?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말미를, 항상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움켜쥐고, 움켜쥐고 해오면서
지금까지 버텨왔다보니,
이제 이렇게 무에서 희망을 짚어나가며 버티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서인지, 유독 힘들게 다가왔던 찰라였는데
그래도, 다시 살 길을 찾아보려고 꿈틀대는 것 보면
아직 나는 죽어서는 안되는 것인가보다.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죽었을 때, 엄마가 얼마나 서글프게 우실까, 엄마가 그 이후 삶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차마 이행하지 못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그 생각에 다시 자극을 받고, 다시 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이제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차분히 생각해보자.
분명한 것은 나는 통계학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렇게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